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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싱에 대하여
   
 
체중별로 나뉘어 같은 체급에 속하는 두 경기자가 가죽으로 만든 글러브를 양손에 끼고 정사각형 링 안에서 주먹만으로 서로 치고받는 스포츠이다. 프로와 아마추어 경기가 있으며, 아마추어 경기는 올림픽경기대회 정식종목이다. 경기자의 연령은, 아마추어는 시니어가 15세 이상(올림픽에서는 17세 이상)이고 프로는 17세 이상이다.

BC 4000년 무렵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당시 이미 왕의 군대가 무술훈련의 하나로 권투를 익혔음이 판독되었다. 또한 국제복싱연맹에서 발굴한 BC 3000년 무렵 크레타섬(Creta)의 항아리가 실증자료이다. 이집트나 에티오피아에서의 권투가 크레타섬을 거쳐 그리스로 건너갔고, BC 688년 제23회 고대올림픽대회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당시 경기자는 주먹을 보호하기 위해 붕대 모양으로 자른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으로 감았다. 시합은 야외에서 가졌고, 링도 없었으며, 체중(體重)에 의한 체급구분도 없었다. 물론 라운드 수(횟수)도 정해져 있지 않았고, 어느 한쪽이 쓰러져 못 일어나거나 항복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근대 복싱의 탄생은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검술과 곤봉술로 이름이 난 제임스 피그(James Figg)가 1718년 런던(London)에 복싱 아카데미를 개설하여 제자들에게 복싱을 가르쳤다. 당시는 맨손으로 싸웠으며, 승자는 상금을 받았으므로 복서를 프라이즈 파이터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프로복서의 전신이다. 그뒤 피그의 제자 잭 브로턴이 처음으로 스포츠화하였다.

1743년 그가 세계 최초로 만든 7개조의 경기규칙 ‘브로턴 코드’는 1838년 좀더 세부적인 내용을 갖춘 ‘런던 프라이즈 링 룰’로 개정되었다. 또한 그는 1747년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처음으로 글러브의 초기 형태인 머플러를 고안하였다.

1786년에는 당시 아마추어스포츠협회 임원인 J.G.젬버에 의해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권투의 후원자인 퀸즈베리(Queensberry) 후작의 이름을 따서 ‘퀸즈베리룰’이라 불렀다. 이것이 현대 권투규칙의 기반이 되었고, 19세기 말부터는 체급별로 경기를 하였다.

근대 복싱은 프로로 출발하였으나, 아마추어 복싱도 성행하여 1867년 처음으로 아마추어선수권대회가 퀸즈베리룰에 따라 열렸다. 1880년 영국에 ABA(Amateur Boxing Association:아마추어복싱협회)가 창립되었다. 근대올림픽에 처음으로 참가한 것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e) 대회부터이다. 현재 아마추어 경기는 1946년 설립된 AIBA(Association Internationale de Boxe Amateur:국제아마추어복싱협회)에서 통할하며, 프로권투는 1920년 결성된 NBA(National Boxing Association:미국복싱협회)가 통할하였다.

그뒤 1962년 WBA(World Boxing Association:세계복싱협회)로 개편되었는데, 이듬해인 1963년에는 이에 대항하는 기구로 WBC(World Boxing Council:세계권투평의회)가 조직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3년 IBF(International Boxing Federation:국제복싱연맹)가 창설됨으로써 각 체급은 3명의 세계챔피언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 복싱이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912년 10월 7일 단성사(團成社)의 주인인 박승필(朴承弼)이 유각권투구락부(柔角拳鬪俱樂部) 주최로 열린 흥행에서였다. 흥행 내용은 체육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유술(柔術)·권투·씨름의 3가지 경기였다. 1916년 미국인 선교사 길레트(P.Gillett:한국명 吉禮泰)가 권투 글러브를 가지고 들어왔으며 1922년부터 권투시합이 중앙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회)에서 연례행사로 거행되었다.

1925년 1월 30일 중앙YMCA 체육부 주최로 열린 제9회 실내운동회 때 정식 경기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스포츠로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27년 9월에는 중앙YMCA 체육부에서 권투부를 개설하여 30명의 부원을 정식으로 지도했으며, 1928년 6월에는 중앙YMCA가 주최하고 동아일보사가 후원하여 제1회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1929년에는 황을수(黃乙秀)가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한국 아마추어 권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한국의 권투가 처음으로 국제무대에 나선 것은 1932년 제10회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올림픽경기대회이다. 1934년 조선아마추어권투연맹이 조직되었고, 마닐라(Manila)에서 열린 제10회 극동선수권대회에서는 밴텀급의 김창엽(金昌燁)이 동양선수권을 획득하였다.

1946년 서울운동장(지금의 동대문운동장) 특설 링에서 조선아마추어권투연맹 주최로 제1회 조선아마추어권투선수권대회 겸 올림픽 파견 제1차 선발전을 열어 광복 후 한국의 권투부흥과 국제무대로 나가기 위한 터전을 닦았다. 1935년 프로권투와 아마추어 권투가 분리되면서 프로권투 조직체인 조선권투연맹이 창설되었다.

당시의 프로권투 선수로는 김정연(金正淵)·서정권·황을수·이상묵(李相默) 등이 활약하였다. 전조선아마추어권투연맹이 1945년 10월 창립되어 1947년 AIBA(Association Internationale de Boxe Amateur:국제아마추어권투연맹)에 가입했으며, 같은해 12월 복싱 단체들은 대한권투연맹으로 통합되었다. 1955년 필리핀·타이·일본·한국으로 구성된 OBF(Orient Boxing Federation:동양복싱연맹)의 창립국으로 아시아 지역의 프로권투를 관장하였다.

대한권투연맹은 1965년 5월 사단법인 KBC(Korea Boxing Committee:한국복싱위원회)로 발족되어 한국의 프로복싱을 관장하고 있으며, 아마추어 복싱은 KABF(Korea Amateur Boxing Federation: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에서 주관한다. 1960년 강세철(康世哲)이 동양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이 되면서 프로권투의 국제무대 진출이 본격화되었다. 1963년 WBC(World Boxing Council:세계복싱평의회)에 가입했고, 1965년 WBA(World Boxing Association:세계복싱협회)에 정식 가입하였다.

1983년에는 새로운 기구인 IBF(International Boxing Federation:국제복싱연맹)이 창설되었다. 1966년 WBA 주니어 미들급의 김기수(金基洙)가 세계챔피언이 된 이래 홍수환·유제도·김태식·김환진·유명우·최희용·문성길·박영균 등이 WBA 세계챔피언, 염동균·김성준·김상현·박찬희·김철호·장정구·변정일 등이 WBC 세계참피언이 되었다.

한국 프로권투사상 가장 빛나는 전적을 남긴 장정구는 1988년 11월 WBC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을 자진 반납할 때까지 15차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끝냄으로써 동급 세계 최고기록을 세웠다. 주요 국내경기로는 전국신인선수권대회·전국학생선수권대회·전국학생신인선수권대회·대통령배쟁탈 전국아마추어복싱대회 등이 있으며, 주요 국제경기로는 올림픽경기대회·아시아선수권대회·세계복싱선수권대회 등이 있다.

복장-아마는 런닝 셔츠와 팬츠를 착용하는데, 프로는 팬츠만을 착용, 상반신은 알몸이다.

또한 아마의 주니어에선 헤드기어(head gear)를 사용해야 한다. 링과 글러브- 링16~20피트(4.9m~6.9m) 평방이며, 로프는 아마가 석줄, 프로가 넉줄이다.

글러브는 아마가 8온스 프로는 6온스와 8온스, 그리구 밴디지(bandage) 의 양은 아마는 프로보다 작다.

시합 횟수- 한 라운드의 시간은 같은 3분이지만 라운드수는 아마가 3라운드이고 프로는 4, 6, 8, 10, 12, 15 라운드로 되어 있다.

채점방식- 아마는 20점 법인데,프로는 5점법, 10점법 등이 있다. 채점의 기준으로 주목되는 것은, 다운은, 프로의 경우에는 큰 포인트가 되는데, 아마에선 한번의 그린히트로 밖에 평가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구, 아마에선 무승부가 없다

아마와 프로의 개념에 대한 해석은 복싱의 역사와함께 달라지고 있으나 일 반적으로 아마는 복싱을 순수한 취미로 하는 스포츠맨을 자칭하며, 프로는 금전적인 보수를 목적으로 하는 복서를 말하는데 양자의 공통되는 것으론 승리의 영광과 명예를 들수 있다.

여하튼 아마는 순수한 기술만을 추구하며, 시합에선 그기술만을 추구하며, 시합에선 그 기술과 스포츠맨쉽을 발휘하면 된다. 그래서 선수의 건강관리나, 시합에서의 반측행위는 특히 까다로우며, 따라서 페어프레이가 요구된다.

이토록 프로선수엔 아마의 몇배 노력이 필요하며, 영광의 자리를 따내는, 소질 외엔, 격심한 트레이닝에 견디어 내는 강한 의지와 체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 때문에, 복서로서의 바탕을 착실히 하려면 아마 때의 경험을 연마해 둘것이 요구된다.

신발- 발에 꼭 맞는 복싱슈즈를 새로 맞추면 좋은데 시판되는 신발을 잘골라도 무방하다. 테니스화나 농구화도 당장은 연습할수 있으나, 이런 종류의 신발 밑창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되어있어, 풋워크의 연습을 시작할때 불편하다.

복싱슈즈의 밑창은 풋워크를 하기에 좋게 얇은 가죽으로 되어있다.
양말- 보통 것보다 두툼한 순모제, 스키나 골프용도 좋다. 셔츠- 단추가 달리지 않은 둥근 네크가 좋다. 집에서 입던 것도 상관없다. 트렁크스 논파울 프로덱터-하복부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 마우스 피스 밴디지 펀칭 백용 글러브 그밖에 겨울철 로드 워크에는 면제의 두꺼운 땀배기용 속내의 셔츠를 껴 입고, 그위에 스웨터를 착용 한다.
또한 러닝 중에는, 엎어지거나 발목을 상하기 쉬우므로, 될수 있으면, 스키용에 쓰이는 애프트 부우쓰와 같은 목구두가 있으면 좋다.


경기장소는 실내든 옥외든 관계 없다.
프로의 링 규정은 정사각형의 네 구석에 지주(支柱)를 세우고, 링 바닥의 높이는 건물의 바닥에서부터 91 cm 이상, 1.22 m 이하이며, 넓이는 4.88 m2이상 6.10 m2 이하 링의 바닥에는 펠트 등을 깔고 그 위에 캔버스를 덮는다.

로프와 바깥쪽의 플랫폼의 너비는 61 cm 이상, 조명은 적어도 4 kW 이상..
글러브는 아마추어의 경우 67 kg 이하의 선수는 8온스(약 227 g) 67 kg 이상의 선수는 10온스(약 284 g)의 글러브를 사용하고 프로의 경우 웰터급까지는 6온스(약 170 g), 미들급 이상은 8온스를사용 피혁 부분의 무게는 속에 메워 넣은 것의 무게보다는 가벼워야 한다.

링 로프는 3 ~5 cm의 굵기를 지녀야 하며, 링에는 3~4가닥의 로프를 친다. 주먹에 감는 붕대(bandage)는 너비 5 cm, 길이 9.14 m(아마추어는 2 m) 이하의 부드러운 헝겊(주로 붕대)을 쓰고, 너비 2.5 cm, 길이 7.5 cm 가 적당하다.